Y Y Family Room 23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아라

2011년 3월 6일 루비와 로사 보아라. 두 달여 참으로 애 많이 썼다. 직장일 틈틈이 짬 내서 이런 저런 준비하랴, 집수리 하랴, 살림 들여 놓으랴, 사람들 만나 인사 차리랴-- 피곤하고 힘들었을 텐데도 웃음 잃지 않고 마침내 를 잘 치러냈구나. ‘사랑의 힘’이고 ‘지혜의 결실’이다. 이제 그동안 쌓인 피로 하와이 하늘과 바다에 몽땅 풀어버리고 푹 쉬다 오렴. 술기운이 있거나 피로하거나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기냥’ 쉬고 ‘잉태의 순간’은 뒤로 미루렴. (시엄마가 침실까지 들어오느냐고 나무라지 말고) 내가 ‘엄마’가 되기 전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이러는 거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은 아이 人性이 세 살이면 결정된다는..

Y Y Family Room 2023.10.02

예단 오던 날

2011년 1월 23일 (일) 며칠 동안 세 식구가 온 집안을 다 뒤집어 놓고 쓸고 털고 닦고 버리고 하며 문자 그대로 ‘대청소’를 했다. ‘새 식구’를 맞이하는 기쁨으로. 낮부터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오늘같이 좋은 날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눈이 와서 좋다고들 했다. 드디어 12시 30분, 대문이 열리고 이불 보따리와 선물 꾸러미를 든 예비 신랑신부가 들어왔다. 옷을 갖춰 입고 인사를 받았다. 주현이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맵시가 그대로 새색시였다. 부피가 큰 이불보따리부터 하나하나 아이들 보는 앞에서 풀어 보며 그때그때 칭찬의 말과 치하를 했다. 반상기며 은수저 세트며 작은 곡물 복주머니와 손거울까지 눈을 즐겁게 했다. 현금도 보내오셨다. 가족과 양가 친척들을 위해 쓰시라고. 어제부터 준비한 갈비조..

Y Y Family Room 2023.10.02

<굴국>과 <감자전>

2011년 1월 2일 이 둘이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손으로 이 음식들을 만들어 상에 올려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번 新正에 작은아들이 느닷없이 이 음식들을 만들겠단다. 집에 있는 재료들을 확인하더니 직접 장까지 봐 와서는 아침상에 내놓겠다며 부지런을 떤다. 장 봐온 것을 보니 알이 굵은 굴과 부옇고 큼직한 강원도 감자였다. 아들은 요리사, 나는 조수가 되어 요리를 시작했다. 다시 국물을 내달라길래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내고 한편에서 무채를 썰어놓았다. 아들은 손 빠르게 이것저것 넣고 달달 볶다가 굴한 줌 넣고는 우르르 끓인다. 그러면서 “엄니, 한소끔이 뭐예요?”한다. “한번 끓어오르는 것을 말하는 거지 뭐.” 하니까 “아, 네 다 됐어요. 해장국으로는 이게 최고래요.” 한다. ..

Y Y Family Room 2023.10.02

상견례 날

-강이 조부모님께 드리는 글- 2010년 12월 19일 일요일 오늘은 결혼당사자인 강이와 현이가 양가 부모를 한자리에 모시는 날입니다. 옛날의 약혼식을 대신하는 절차예요. 행여 시간에 늦는 실수라도 할까 봐서 일찍 출발했는데 저쪽 부모님도 똑같은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에요. 약속시간 30분 전에 양가가 한자리에 앉았어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신 다복한 집안이고 부모님이 더 할 나위 없이 반듯하고 훌륭하신 분들인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도 제 마음에 드는 일은 바깥사둔께서는 헌칠한 체격에 부드러운 인상을 지녔는데 평생 부지런하고 학구열이 높아서 지금도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그런 분이고, 안사둔께서는 곱고 깨끗한 용모를 지녔는데 아담한 체격은 저와 비슷한데 퇴직 후에 봉사활동을 시작하려고 동화구연가 자격을 ..

Y Y Family Room 2023.10.02

독립 선언하고 출가한 아들 이야기

2009. 1. 6 (화) 집 떠난 지 벌써 닷새가 됐다. 이제 나이 서른넷이니 어떤 방식으로든 독립을 해야겠다고, 취직이 결정되자마자 집을 구하러 다니더니 목동역 부근에 작은 거처를 마련했다. 이삼 년 전만 하더라도 집을 나가겠다는 말만 들으면 눈물이 핑 돌고 그렇게도 섭섭하더니 지금은 무거운 짐 한 보따리를 내려놓은 듯 맘이 홀가분하다. 당사자가 알면 서운할래나? 어떻든, 이 어려운 때에 일자리를 쉽게 구한 것 고맙고, 엄마 신세 그만 지고 나가 살겠다는 뜻이 갸륵하고, 얼른 돈 모아 결혼하겠다는 결심도 기특하고- 눈물 날 만큼 힘들고 서러운 시간을 넘어 지금에 이르니 모든 것이 고맙고 고맙다. 이제 나는 작은애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본다. * 퉁명스런 데가 있으면서도 가끔 툭툭 던지는 유..

Y Y Family Room 2023.10.02

49재를 마치고

2009. 1. 23 (금) 큰법당 문을 여니 언제나처럼 오빠가 제일 먼저 와 있었다. 오늘은 7재 중 막재를 올리는 날이다. 오늘 중요의식은 관욕(몸과 마음의 업을 부처님의 감로법:말씀으로 깨끗이 닦아드리는 의식)을 행하는 일이다. 어머니 입던 옷과 목욕 도구와 흰 고무신을 휘장을 두른 병풍 안쪽에 모시고 스님의 염불과 주지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49재 기간 동안 처음 뵙게 된 주지스님은 자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 어머니 영정을 집의 출입구에 모셔놓고 드나들 때마다 거기 계신 듯 인사 여쭈어라. * 너그럽게 살아라. * 마음을 청청하게 유지해라. 불안하고 잡념이 들 때는 빈방에 들어가 좌정하고 한 20분씩 고요히 앉아 있어라. * TV를 멀리하고 불교방송을 자주 들어라. 영가에 마지막 절을 ..

Y Y Family Room 2023.10.02

친정아버지 忌日을 앞두고

-지금 살아 계시다면 92세가 되셨을 아버지-떠나신 지 서른 해, 아버지 忌日을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내가 힘들 때 가끔 꿈에 오시어 모습을 보이시더니 이제는 꿈에서 조차 뵐 수 없으니, 어느 먼 곳으로 영영 가 버리신 건가요?- 30년 남짓 ‘아버지’라는 존재가 내 곁에 머물다 가셨지만, 돌이켜 생각할 때 아버지의 존재가 나한테 어떤 의미였나 자문해 본다. 늘 술에 절어 몸도 잘 가누지 못한 채 밤늦게 귀가하시는 모습, 밤새 이어지는 어머니의 지청구를 자장가 삼아 주무시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같이 구부정한 어깨를 뒤로한 채 일터로 나가시는 모습, 술이 얼근해서 기분 좋은 날은 따끈한 군밤이나 군고구마 봉투를 들고 들어오시곤 하던 모습-- 자식들과 무릎을 맞대고 나란히 앉아 속마음을 나누거나 도란도..

Y Y Family Room 2023.09.24

주례신부님께 드리는 프란치스코의 편지

--2016년 6월 8일--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책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께서 사주신 “신비 시리즈” 였습니다. 열권 정도 되는 책이었는데 동물의 신비, 식물의 신비, 인체의 신비, 지구의 신비, 등등 자연과학에 관련된 얘기들을 만화로 엮어서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 놓은 책이었어요. 화장실에도 책을 들고 갈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는 똥을 누면서도 책을 읽던 절 보고 “책이 그리 좋으니?”라고 물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책의 두꺼운 하드커버가 나달나달 해질 정도로 책읽기를 좋아했었고, 할아버지는 그런 저를 무릎에 앉혀 놓으시고, 판사나 검사가 되거라 라고 하셨었지요, 전 그게 뭐하는 건지도 몰랐던 터라, 전 과학자가 될거에요 라고 당돌하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대가족이라는..

Y Y Family Room 20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