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장어집
광장시장 골목 안에 ‘평양장어’집,
그냥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 작은 간판이
조등처럼 걸려 있는 집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서
아지매가 피 묻은 손으로 장어를 뜨고 있다,
17년째 장어장사에 손끝이 아직도 서툰
-1키로만 주세요
다섯 마리가 올라왔다.
송곳같은 걸로 대가리께를 콱 찌른다
-급소가 따로 있나요?
-잡을라니까 아무데나 찌르는 거지
-처음엔 힘드셨겠어요.
-지금도 괴로워, 아프간인가 어디서 총 맞아 죽은 사람 생각하면서 이걸 할래니
심장병이 다 생겼어
-대개는 남자가 하는데 어떡하다 아줌마가 이런 일을--
-내가 실향민 아녀? 자식새끼하고 먹구 살래니 여기 와서 안 해 본 게 없어
김밥두 팔구 두부장사도 혀보구 호떡 장사 고구마장사 그럭하다 이걸 하게 되얐지
아무나 못하는 겅께 이날 입때꺼정-
-장사는 괜찮으세요?
-요샌 손님두 읎어-
-왜요?
-아 돈이 없응께 그러지, 내 나이 한창일 때는 그래두 장사가 꽤 잘 됐어 그 새마을운동인가 뭔가 했잖여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허구, 또 왜 그런 노래도 있잖여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도마 위 장어가 꿀떡꿀떡 피를 말리는데 아지매 한의 실타래는 끝도 없이 풀려나오고 저 혼자 사시미 칼이 피 빼물고 칼춤을 추는데
시큰한 칼끝에서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써보나
마침내 몸뚱이는 둘로 나뉘어 등뼈를 온통 들어내고도
소리 없는 절규에
숨구멍마다 피가 막힌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쏟아낸 생목숨이
스치로폴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기고
아줌마 넋두리봉투
졸졸 내 그림자 뒤를 따른다
2007.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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