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방/피정과 말씀

신약 4복음서 필사를 마치고

맑은 바람 2014. 4. 6. 23:54

 

마태오복음서, 마르코복음서를, 루카복음서, 요한 복음서를 4복음서라고 하는 이유는

그 부분에 예수님의 행적이 다 들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

구약 필사를 끝내가면서 新天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고 기대한 신천지는 펼쳐지지 않았다.

다시 막막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믿는다.

성경 필사 한번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시도해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변함없이 未知에 대한 경이로움과 敬畏心으로 끝까지 다가갈 것이다.

 

-마태오복음서-

예수님도 숙명을 바꿀 수는 없었나 보다.

자신의 죽음,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否認-

 

<베드로와 유다>

예수가 가장 믿고 사랑한 베드로는 막상 자신이 곤경에 처하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시치미 뗐다.

돈주머니를 관리했던 유다는 예수로부터 ‘도둑’소리를 들으면서 노골적으로 예수를 배반했다.

베드로는 나약한 우리들의 모습을, 유다는 뻔뻔스럽고 몰염치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 속에 그 두 사람이 들어있지 않다고 큰소리 칠 자 누구겠는가?

과연 그들을 돌로 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세와 요나>

하느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절한 두 사람-모세는 자신이 말 주변이 없다고 뒤로 물러나고,

요나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자마자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뛰어야 벼룩이고 하느님 그물망을 피할 수 없어 굴복하고 만다.

성서의 인물들의 모습을 우리 자신에 대입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부모님 앞에서 저질렀던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예수와 법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노라면 어찌 저리 절묘하게 해답을 찾아낼까,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즉문즉설의 원조는 예수님이 아니었나 싶다.

예수님은 바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구하게 한다.

바리사이들 앞에서, 그를 시험하려는 율법교사 앞에서, 빌라도 앞에서 명쾌하게 답을 던질 때 얼마나 통쾌했는지--

 

-루카복음서-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3:17)

하느님을 잘 알지도 못하던 어린날, 교회반사들이 어떻게 이 말씀을 강조했었는지 나는 꿈에서까지 지옥불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세 여인>

예수님을 낳아 주신 분, 창녀의 몸으로 예수님께 용서받고 그를 끝까지 따르게 되는 여인,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발을 닦아드린 여인-

예수님의 생에 영향을 끼친 세 여인은 모두 마리아였다.

 

<세상걱정과 하느님의 나라>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12:22-30)

얼마나 공허한 울림인가?

 

<깔려 죽은 열여덟 사람>

내게 18의 숫자는 매우 친숙하다. 그런데 성서에서 18은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걸까?

 

<희망의 메시지>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13:30)

 

<종과 주인>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17:10)

우리는 종, 하느님과 예수님은 주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디에?>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17:20-21)

 

<십자가와 제자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옆자리의 죄수를 구원하는 그 순간에도 제자들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친지와 여자들만이 멀찍이 서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자기 목숨 보존을 위해서였나, 아니면 예수님 떠난 후에 사명을 위해서였나?

홀로 숨져가는 예수의 고독이 느껴진다.

 

-요한복음서-

4복음서 가운데 총체적으로 예수의 행적을 그리고 하느님이 누구신가 등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해 주는 복음서다.

<예수님이 박해당하는 이유>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참된 빵>

예수님은 생명의 빵-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6:32-55)

예수의 정체성을 가장 자세히 기술한 부분이다.

아무리 행위가 아름다워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 수 없고 오로지 선택받은 자들만 하늘나라에 들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녀가 떠오른다.

이 부분을 인정하고 공감하느냐의 여부가 신앙의 관건!

 

<형제들에게도 따돌림 당하는 예수>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7:5)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서 참으로 믿는 자를 발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나 내 주변에는 믿지 않는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 믿는 자들이 얼마나 넘쳐나는지--

 

<하느님의 존재>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

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7:28-29)

 

<예수부활 후의 거처>

-나는 잠시 동안만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또 내가 있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7:33-34)

 

<즉문즉설의 하이라이트>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8:7)

 

<아브라함과 예수>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8:58)

유다인들의 궁금증과 질문은 곧 나의 궁금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예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밝히시자 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메시아 탄생의 의미>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10:9)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10:11)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10:17)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10:18)

 

<하느님과 예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10:25)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10:25-30)

다시 유다인을 격분하게 하여 돌을 던지려 한다.

 

<예수님의 눈물>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눈물을 보이셨다.(11:35)

침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격분하기도 하는 예수의 모습은 보았으나 눈물을 흘리는 예수ㅡ이 모습은 여기서 처음 보게 된다. 라자로를 끔찍이 아끼셨나 보다.

 

<예수를 죽이려는 진짜 이유>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요.(11:48)

 

<진정한 삶>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12:35)

 

<베드로의 호언장담>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13:38)

 

<성부와 성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14:10)

 

<아버지-예수-제자>의 관계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14:20)

 

<종과 친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15:12-15)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정의>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

 

<예수가 세상에 오신 까닭>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18:37)

 

<예수 부활하시다>

그런데 부활하신 후 첫 모습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여주신 속뜻은?

 

<부활한 예수님의 첫마디>

-평화가 너희와 함께!(20:19)

 

<토마스와 나>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20:25)

직관형이 아닌, 철저히 감각형인 토마스와 나-둘은 얼마나 닮은꼴인가!

 

<복음서를 쓴 목적>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20:31)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