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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노마

맑은 바람 2020. 9. 29. 13:06

노마할머니는 아들 팀과 며느리 라미와 함께 1년 동안 미국 전역 32개주 75개 도시를 어행했다

 

책머리의 첫문장이 주는 인상은 음식점에서 에피타이저를 앞에 놓고 한 숟갈 뜰 때의 기분과 유사하다.
'아, 이 메뉴 잘 골랐는데~꽤  맛있겠는걸!'
여행기인데도 사진 한 장 없다. 자그만치  351쪽이나 되는데 말이다.
사진없이도 독자의 시선을 꽉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것도 같고~
책을 주문해 놓고 기대감에 설렜는데, 재밌게 읽히리라는 예감이 든다.
팀은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한 건축업자라는데 글을 풀어나가는  솜씨가 여간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니다.
마치 전문작가가 대신 써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라미의 글은 생각하면서 읽게 만든다.

(23)길 위의 삶은 단순하고 자유롭다. 라미와 나는 단순함과 자유가 현대인의 삶에서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해독제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걱정거리도 적었다. 알람시계 대신에 태양이 뜰 때 일어나고 태양이 질 때 잠자리에 들며, 몸의 리듬에 맞추어 하이킹을 하고, 순간을 즐기고, 책을 읽고,  음식을 먹는 것이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삶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았다. 자유롭게 살며 가볍게 여행했다. 바하칼리포르니아는 우리의 북극성이었다. 뜻밖에 얻은 에어스트림은 우리의 삶을 구해 주었다. 조금더 정확히 말하자면 삶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인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 무엇이든 눈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33)노화와 질병은 우리의 계획을 봐주지 않는다. 자기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지 않고 그저 자기들의 때가 되었을 때 찾아와 인생을 휘저어 놓는다.
(75)어머니는 우리의 보살핌에 대한 대가로 가격을 매길 수도 없는 소중한 것을 주고 있었다. 순수한 즐거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하고자 하는 태도, 모든 걸 버렸기 때문에  모든 걸 즐기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77)어머니는 지질학을 좋아하고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고 어머니의 인생에서  예술과 창작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바구니를 만들어 기증해서 자선기금을 모금하는데 보탰고, 은으로 된 장신구도 만들었으며, 도자기를 구울 줄도 알았다. 또 목탄으로 스케치도 했다. 아름답게  정원 가꾸는 솜씨로 미루어 봤을 때 자연에도 관심이 많았다.
(1957년생 아들 팀은 바로 입양아였다. 친자식인들 이보다 더 살가울 수가 있을까? 잔잔한 감동이 인다. 어찌 소설이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랴!)

(106)아버지는 항상 즐겁고 행복한 분이었는데 무슨 일로 우울증 약까지 드시게 된 거지?
그때 청결하고 정돈을 잘하며 능력있는 분이었던 아버지를 어수선하고 깔끔하지 못하며 정신이 어지러운 불행한 남자로 바꿔버린 것은 아버지 당신의 문제나 병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병 때문에 먹게 된 약들이 넘치고 넘쳐서 그리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116)칸나비스(대마초)오일과 캡슐--그동안 병원에서 처방한 약들을 모두 끊고 이 두가지 만으로 종아리 붓기가 해소되고 엄마의 육신의 고통도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하혈까지 멈추었다.
--하혈이 멈춘 거 같아.
아무래도 그 마리화나 가게에 다시 가야겠어.(엄마)
(161)어머니의 눈빛을 보며 나는 평온한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주도하여 인생의 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어쩌면 어머니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열기구타기'를 마침내 실현하는 순간)
(아들내외가 여행기를 페이스북에 올린 덕분에 방송국 출연도 하게 되고 가는 곳마다 VIP 대접을 받고~아들 내외의 효도여행은 참으로 특별한 것이 되었다.)
(208)엄마는 항상 본인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피해왔던 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돌보며 사랑하고 받기보다는 주는 데에 익숙한 분이었다.그런 엄마를 매리에타에 사는 사람들은 그냥 놔두지 않을 작정인 것 같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엄마에게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며 사진을 찍자고 했다.(미국문화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놀랍고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생면부지의 한 노인을 위해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열어준다는 일이  가능이나 할까?)
--미스노마 할머니, 생일 소원이 뭐예요?
--아흔 두 살까지 사는 거요.(현재 91세)
(238)--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무엇입니까?(기자)
--바로 여기요, 이곳이 최고로군요.(노마)
(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팀이나 라미나 노마할머니 모두 삶의 자세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불행은 예고없이 닥치지만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고 다가오는 날들을 긍정적으로 맞이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희망을 불러오고 성취하면서 행복감과 보람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상황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걸 되씹어서 오는 결과는 우울감, 비관, 낙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마할머니는  암에 걸렸고 다 큰 딸을 잃었고 여행에 오르기 바로 전에 영감님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여행 중에 할머니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고 순간에 충실하며 행복해 했다.
나의 오랜  습관(부정적인 생각, 남의 흉 드러내기 등에서 오는 미움, 원망, 불행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노마네 가족의 긍정적 생각하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은 노마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외에 노마네 가족에게서 배우는 바가 크다는 점이다.)
(257)팀의 기록:수풀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는 평화로운 적막이 흘렀다. 드디어 아스팔트길이 나왔고 캠프장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백미러로 보니 엄마는 링고를 껴안고 잠들어 있었고 내 옆에서는 라미가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슴에는 사랑이 가득차 올랐다.
(268)링고의 위기:링고가 장이 꼬여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거액의 수술비를 지급하고.
"희망을 잃으면 안돼. 긍정적으로 생각해. 링고는 너희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 싫어할 게다. 수술은 잘 될 거야. 너희들이 이렇게 울고불고 한다고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어."(엄마)
(금강이의 마지막날들이 떠올라 나도 눈물을 쏟았다.)
(277)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들:병원밖으로 나서자마자  우리는 어머니의 심장이 천천히 기능을 멈추어 가고 있다는 현실을 떠올리고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돌아갈 길은 없었다.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이 순간을, 바로 지금의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292)노마와 함께한 여행 1주년:
지난 1년 동안 정말 특별한 한해를 보냈다. 이제 남은 기간도 특별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인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을 고마워하며 그 기간이 얼마나 됐던지 간에 열심히 살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334)(노마의 일기를 보며, 우린 무슨 이야기든 쓸 수 있고 또 부정적인 이야기도 쓰면서 사실감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내가 남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미소짓고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으면 언짢은 이야기는 쓰지 않고 묻어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339)우리는 지금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순간을 살 뿐이다.이 순간 내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아름다움과 즐거움, 사랑 그리고 가능성으로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엄마는 바로 그렇게 살다 떠났다.

 

팀의 기록--엄마의 일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엄마의 일기가 그 안에 적힌 내용이 아니라 적히지 않은 내용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암과 유명세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 여행의 동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우리여행의 가장 큰 주제가 바로 암진단과 그 이후에 찾아온 유명세였는데도 말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질병의 고통과 같은 내용도 기록하지 않았다.(고통에 대한 호소는 값싼 동정을 불러오고, 유명세 탄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자랑질한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할 게 분명할 테니~독일인의 피가 흐르는 노마를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340) 대신 엄마는 삶에 대해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소한 일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즐거움이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사랑이 사랑을 낳고 평화가 평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에게 인생에 대해서 "Yes"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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