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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조갑녀>의 공연을 보고

맑은 바람 2009. 8. 1. 16:55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단아한 두루마기 차림의 사회자(기획 연출자 진옥섭)는 알맞은 유머와 재치로 매끄럽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승무, 교방춤, 살풀이, 태평무, 도살풀이, 사풍정감(한량무의 일종), 채상소고춤은 하나하나 완벽한 작품이었다. 장고, 거문고, 가야금, 아쟁, 해금, 북, 대금, 피리, 口音으로 이루어진 시나위 가락에 맞추어 때로는 간드러지게, 때로는 심금을 울리며 춤 장단을 맞추었다. 학의 날개인듯 유연한 어깻짓, 소매 끝에서 정지한 듯 흐르는 손가락 놀림, 희푸른 옷자락이 물결치며 꺼질세라 내딛던 버선코와 함께 날아오르는 몸동작-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저 무대를 자유자재로 누비는 분들이 오십 대에서 많게는 75~6세라니~. 저 동작이 나오기까지 그들의 외길 인생이 오버 랩 되어 숙연해진다.

오랜만에 전통춤의 정수를 보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게다가 이번 공연 프로그램 표지 글씨 '춤! 조갑녀'를 직접 쓴 장사익 선생을 막간에 잠시 모시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선생은 다소곳이 무대 위로 올라서더니 한귀퉁이에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고 마이크 앞으로 다가간다. 그 조심스런 동작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애절하면서도 구성진 목소리로 <봄날은 간다>, <동백아가씨>를 들려 줬다.

 

 마침내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될 춤꾼 조갑녀. 한때는 남원에서 '춤은 조갑녀'소리를 들으며 승무,검무,살풀이춤으로 이름을 떨쳤던 여인-결혼과 함께 한평생 갇힌 춤을 풀어 놓지 못해 ‘뇌신’을 먹고 살았다는 여든 일곱 그녀의 맺힌 삶이, 누에고치에서 실 풀리듯 풀려 나가라고 특별히 바닥에 자리도 깔았다. 젊은이의 부축을 받고 드디어 그녀가 무대로 나왔다. 조마조마했다. 과연 춤을 출 수 있으려나? 사회자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녀의 춤이 길고 짧은 건 연주자들의 손에 달렸다고--

민살풀이 춤을 보여준다던 그녀는 잠시 그린 듯 서있더니 서서히 어깨 춤동작이 나왔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관객을 향해 잠시 움직임을 보이더니 공손히 절을 한다. 프로그램에서 이미 예견한 대로 5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퇴장하는 그녀를 사회자가 다시 무대로 이끌어냈다. 그러나 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어지럽다며 절을 하고 퇴장했다. 전례 없이 국립국악원 예악당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춤꾼 조갑녀의 ‘춤 없는 춤’ 앞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앞의 노름마치들은 조갑녀를 위한 들러리인가, 그들의 한판을 위한 조갑녀의 배려인가? (2009. 7. 26)

 

                  '춤! 조갑녀'가 장사익선생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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