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3 10

흑장미다방

지금이야 카페니 원두커피 전문점이니 하는 세련된(?) 간판이 더 많고 인기도 좋지만, 70년대만해도 젊은이들은 만남의 장으로 ‘다방’을 선호했다. 서강대 앞의 , 연대 입구의 , 광화문의 , 명동 입구의 , 프라자 호텔 뒤의 , 중국대사관 뜰이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현재도 옛날 단골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 20대의 방황과 주체할 수 없는 시간들을 고스란히 수용해 주던 공간들이었다. “여자들은 모이면 뭘 하고 노느냐?”고 어떤 남자가 묻더란다. 여자왈, “얘기하고 놀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오직 입만 갖고 노는 걸 남자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포항시절--- 퇴근 후 짬짬한 시간에 생각나는 공간이 또한 이었다. 포항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흑장미 다방엔 당시(1970년)에 착공한 포항제철 때..

사는 이야기 2022.11.13

솔베이지의 노래

사람들은 곧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여행을 떠난다. 특히 결혼한 여자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부엌에서의 탈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여행 중에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누린다. 물론 떠나기 전의 설렘과 기대감도 그에 못지 않지만. --그 겨울이 지나 봄은 또 오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또 세월 가네, 세월 가네 아, 그러나 그대는 기다리는 내 님, 기다리는 님 내 정성을 다해 기다리노라, 기다리노라--- 아--- 아아아아아아아--- 아-- 고교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이 노래는 나에게 '기다림, 그리움'이란 단어의 의미를 절절하게 일깨워 준, 아름다운 노래다. 어느 해 여름, 난 기쁘게도 마음 속으로만 그리던 '솔베이지의 노래'가 탄생한 곳, 북유럽의..

장미꽃 열 송이

스승의 날 임시 휴교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촌지' 때문이라는 둥, 며칠 전부터 언론이 입을 모아 떠들어대며 교사들을 싸잡아 죄인 만들더니, 오늘 이메일을 열어보니 대통령각하께서 친히 '스승님께 감사 드린다'는 편지를 보내오셨다. 눈물나게(?)고맙다. 나를 포함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촌지에 연연하는 선생들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자기 아이에 대한 병적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학부모와 학부모에 대해 거지근성을 가진 몇몇 선생들의 합작품이 '촌지'이건만, 어찌 해마다 이를 들먹거려 선생들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는가. 우리 학교도 이 꼴 저 꼴 안 보려고 몇 차례 부장회의를 했다. 그러나 행정직에 오래 근무했던 교장은 교육법까지 들먹이며 천재지변이 아니면 휴교는 불가하다고 우기는 바람에 '행사를 위한 행사'-..

사는 이야기 2022.11.13

아버님 전상서

아버지를 유택에 모시고 흐른 세월이 어느덧 스무 해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간 아버지를 찾아 뵌 것이 몇 손가락을 꼽을 정도도 못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못내 고개가 숙여집니다. 지난 겨울, 아버지의 둘째 외손자가 자꾸 아버지를 뵈러 가자는 걸 차일피일 미뤘더니 "엄마, 외할아버지 친딸 맞어?" 하더군요. 이제사 고백하지만,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전 단 한번도 애틋하게 '아버지'를 불러 본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저는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학교에서 해마다 새로 나누어주는 환경조사서의 '아버지 직업란'을 쓸 때마다 갈등을 겪어야 했으니까요. 평소대로 솔직하게 쓰면 '조리사'라고 해야 할 텐데, 그게 도무지 창피해서 '상업'이라고 얼버무리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솔직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미웠고 회사..

사는 이야기 2022.11.13

동해중학교

경북 포항시에서 구룡포 쪽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바닷가 솔숲 속에 단층 건물 한 동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이 바로 내 스물 셋의 나이와 함께 떠오르는 다. 1970년-- 졸업도 하기 전 2월에 그곳에 부임했다. 뜨내기 선생들이 매년 자리를 뜨곤 하는 간이역 같은 학교라 한시가 급했던 모양이었다. 1학년 세 반, 2, 3학년 각기 두 반, 모두 7개 학급이 전부인 미니학교였다. 선생이 모자라니 턱없는 요구도 한다. 국문과 출신에게 가정도 가르치고 영문법도 좀 가르치란다. 교단에 서는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서울에서 내려가는 선생들이 꽤 있었지만 이 아이들은 서울말이 무척 생경한 모양이다. 인사말에는 귀기울일 생각 않고 그저 재미있다는 듯이 실실거리며 웃기만 한다. ..

사는 이야기 2022.11.13

내가 겪은 4 19

--1960년 4월 19일-- 내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그 날은 내가 용두동에 있는 서울사대부중에 입학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날씨는 맑고 모든 것은 평온해 보였다. 그 큰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전까지는. 여느 때처럼 우리는 등교해서 오전 수업을 끝내고 한가롭게 점심 후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수다쟁이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그때, 교문 쪽에서 거친 함성과 함께 사대생들이 누군가를 떠메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그들의 어깨 위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죽은 듯이 보이는 대학생이 들려져 있었다. 선생님들은 서둘러 우리들을 귀가 조치시켰고, 우리는 겁먹은 강아지모양 허둥대며 학교 밖을 빠져나갔다. 동대문을 막 지날 무..

사는 이야기 2022.11.13

사라진 학교

서울대학병원 바로 옆 철조망 하나 사이에 가 있었다. 아득히 넓은 운동장 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만국기가 펄럭거리는 밑을 먼지를 폴폴 날리며 달리기를 했다. 훈육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이던가, 단상에 올라 침을 튀겨 가며 육두문자를 내쏟는 때면 아이들은 바들바들 떨며 침도 제대로 못 삼켰다. 이승만 박사 생신이 임박하면 운동장은 꽃밭으로 변했다. 각 반에서 키 큰 아이들만 골라 짧은 주름치마에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히고 마스 게임 연습을 시켰기 때문이다. 한 번도 마스 게임에 뽑히지 못한 나는 작은애들끼리 고무줄 노래로 '이승만 찬가'를 불러댔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도옥립을 위하여 하안 평생 한결같이 모옴 바쳐 오오신, 고마우신 이이 대통령 우우리이 대통령 그의 ..

사는 이야기 2022.11.13

도심 속의 시골

동을 향해 엎어지면 안국역, 자빠지면 버스 정류장, 육교하나 건너면 인사동 거리--- 찻길이 지척이지만 밤이 이슥해지면 사위는 깊은 정적에 싸여 흡사 한가로운 시골에 들어와 있는 기분. 새벽이면 가까운 절에서 들리는 은은한 쇠북소리-- 이삿짐을 풀던 날 집앞 가게에 들어갔더니 "못 보던 아줌마네요?" 하며 두 여인의 시선이 집중된다. "오늘 이사왔어요." "아, 요 앞집에 오늘 이사 들던데---" 동네 소식이 빠삭하다. 이곳엔 없는 게 많다. 슬리퍼 질질 끌고 갈 수 있는 대형 슈퍼마켓도, 할인 마트도, 고층 아파트도, 잘 다듬어진 산책로도 없다. 특히 시골과 닮은 것은 젊은이가 없는 점이다. 일요일날 가까운 성당엘 갔더니 영락없는 시골 교회 분위기인데다 허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신부님의 모습이 매우..

사는 이야기 2022.11.13

귀향

드넓은 논밭이 펼쳐지고 집 앞엔 졸졸 냇물이 흐르며, 뒷산에 밤나무가 있어야만 고향인가? 철조망 친 미군부대, 사거리 드럼통 위에서 수신호를 하는 헌병, 땡땡거리며 신나게 달리는 전차, 눈썹이 뭉개진 얼굴을 누더기로 가린 채, 구걸하러 다니는 문둥이, 해가 지면 종로통에 칸델라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며 펼쳐지는 야시장---- 50년대 서울 복판에 살던 사람들이라면 생생하게 떠올리는 정경들이다. 나는 사대문 안에서 27년을 살았다. 아버지 직장이 광화문 통에 있고,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서야 일을 마치시는 형편인데다 자주 약주를 드시고 귀가하시어, 어머니는 안심이 안 된다며 언제나 아버지 직장을 구심점으로 이사를 다녔다. 결혼 후엔 주로 사대문 밖이 주거공간이었다. 대방동, 독산동, 안양 석수동, 그리고 ..

사는 이야기 2022.11.13

느티회의 부산 나들이

정기적으로 만난 세월은 오래지만 이렇게 2박3일이나 우덜끼리 집 나가 본 건 결혼 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애초엔 기독학생회 7인의 멤버가 모두 함께할 예정이었으나 한 친구가 공교롭게도 우리가 여행 떠나는 날 미국으로 떠났고, 한 친구는 직책이 막중해 직장을 떠날 수 없는 사정이라, 안타깝지만 우리끼리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雪景이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해 주었다. 수학여행을 떠나온 소녀들마냥 부푼 가슴을 안고 부산역에 도착, 먼저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싱싱한 회 한 접시를 떠놓고 소주 한 잔씩 들고 우리의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축배를 들었다. 태종대에서 오륙도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기도 하고, 앞에선 아무리 세상이 힘들더라도 자살같은 건 하지 않기로 다짐도 하고, 에 올..

사는 이야기 202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