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김기택 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 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6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카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카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서로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5
겨울 版畵(판화) -이수익 겨울 版畵(판화) -이수익 겨울 나루터에 빈 배 한 척이 꼼짝없이 묶여 있다 아니다, 빈 배 한 척이 겨울 나루터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홀로 남기를 두려워하며 함께 묶이는 열망으로 더욱 가까워지려는 몸부림으로, 몸부림 끝에 흘리는 피와 상처로 오오 눈물겹게 찍어내는 겨울 版畵(판..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5
기도 -서정주 기도 -서정주 저는 시방 꼭 텡 비인 항아리 같기도 하고 또 텡 비인 들녘같기도 하옵니다 주여 한동안 더 모진 광풍을 제 안에 두시든지 몇 마리의 나비를 주시든지 반쯤 물이 담긴 도자기와 같이 하시든지 뜻대로 하옵소서 시방 제 속은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워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5
벼- 이성부 벼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산다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 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2
전라도 7-이성부 전라도 7 -이성부 노인은 삽으로 榮山江 을 퍼 올린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머지않아 그대 눈물의 뿌리가 보일 때까지 노인은 다만 성난 사랑을 혼자서 퍼올린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인은 끝끝내 영산강을 퍼올린다 가슴에다 불은 짊어지고 있는데 ..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2
수선화에게-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2
같이 살고 싶은 길-조정권 같이 살고 싶은 길 조정권 1. 일년 중 한 일 주일에서 열흘쯤 혼자 단풍 드는 길 더디더디 들지만 찬비 떨어지면 붉은 빛 지워지는 길 아니 지워버리는 길 그런 길 하나 저녁 나절 데리고 살고 싶다 늦가을 청평쯤에서 가평으로 차 몰고 가다 바람 세워 놓고 물어본 길 목적지 없이 들어가 본 외길 땅에 ..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황지우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긴 외다리로 서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잘나가는 이들은 기울 때를 경계하고, 실의에 빠진 이들은 저물 때에 더 빛나는 바다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0
어떤 적막-정현종 어떤 적막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 나간다 그 .. 글사랑방/애송시 2009.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