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376

저가상품이 된 환자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정자에 앉았노라니 좀 전의 일이 떠오르며 슬며시 불쾌한 생각이 든다 며칠째 두통과 콧물이 나고 새벽에 가래가 목에 달라붙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어, 오늘은 작심하고 동네 이비인후과엘 갔다. 의사는 목과 코를 들여다보고 가래가 무슨 색깔이냐, 뱉고 나서 기분이 어땠냐, 머리는 어떻게 아프냐 등등을 물었다. 그러고는 주사 한 대 맞고 가란다. 진료비 1900원. 웬만하면 병원엘 가지 않아서 때론 연 400만원 돈 되는 건강보험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돈이 나가더라도 아프지 않은 게 낫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의사가 진찰을 했으면 '비염이 재발했다든가, 감기가 심하군요' 정도로 진료소감을 언급해 줘야하지 않는가. 딱 1900원어치 저가상품으로밖에 보이..

사는 이야기 2021.05.26

夫唱婦隨

20210219 여행을 떠나며 손녀 유치원 봄방학 기간에 콧바람좀 쏘이고 오마고 가족들한테 미리 공언하고 차표와 숙소를 예약했다. 남은 일은 대니와 툭탁거리지 않고 즐겁게 잘 다녀오는 일이다. 속초행 버스 안에서 마음 먹는다. 이번 여행 중에는 마찰없이 잘 지내보리라고~ 그럴라면 '내 주장(고집)'을 내려놓고 "You are the boss! "라고 말해야 한다. '맘먹으면' 글쎄,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서울을 떠난 지 세 시간 가까이 됐을 때 숙소 가까운 한화콘도 앞에서 차를 내렸다. 예상치 못했던 세찬 바람이 마중을 나왔다.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미는 것같이 발이 저절로 앞으로 내디뎌지며 몸이 균형을 잃는다. 학사평 벌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순간 모자가 훌러덩..

사는 이야기 2021.02.19

2020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

해마다 12월 24일엔 명동엘 간다. 작년 이맘땐 인파에 휩쓸려 걷기조차 힘들었다. 오늘 이 텅빈 밤거리를 걸으니 다른 세상에 와 있는듯 할 말을 잃는다. 언제나 긴줄이 늘어서 있던 곳-- 여기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 한복판 맞아?? 누구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곳 성당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야외에 마련한 이곳 말구유 앞에서 자정미사가 진행된다 그녀는 스물일곱에 이곳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저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두 아들을 낳은 후 서른에 현 카톨릭회관인 '명동성모병원'에서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칠십이 넘도록 잘 살고 있다. 어찌 이곳에 와서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모든 이에게 고난의 시간이 덮쳤다. 지혜와 은총이 함께 한다면 터널의 끝은 멀지 않으리~

사는 이야기 2020.12.24

송년 선물

해마다 성대하게 열렸던 동창회 송년모임이 코로나19라는 괴물의 엄포 때문에 모두 취소되어 허탈하고 아쉬운 맘이었는데, 이 아침 동창회로부터 한아름 선물이 전달됐다. 시인 회장님의 고운 편지글과 함께~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않고, 이 선물이 내 손에 오기까지 뒤에서 말없이 수고한 친구들 하나하나 떠올리며 감사한 맘으로 받는다. 선물은 볶음용 멸치와 명란젓 그리고 낙지젓이다. 가족들과 둘러읹아 따끈한 흰밥에 고것들을 얹어 먹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퍼지겠다.

사는 이야기 2020.12.05

2020 추석연휴

9월 30일~10월 4일 9월 30일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했던 미키네 가족은 8시에야 청주 외가집으로 떠났다. -언제 올 거니? -일요일에요. 왁자지껄하던 집에 두 노인만 남았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5일간의 휴식'이라는 추석선물을 주었다. 산책 나가 외식(숯불돼지갈비)도 하고 오는 길에 통닭과 맥주를 사갖고 와서 TV로 장편영화(아라비아의 로렌스)도 보면서 선물에 감사하리라.(노마언니 고마워~ 난 오늘 드라이빙 미스노마 읽기를 끝냈다.) 고맙다, 사랑하는 현이와 강아! 너희들이 올 수 없어서 엉아네도 청주 가서 일요일에 올라오기로 했다. 4박 5일, 너희들이 주는 멋진 추석선물이다. 늦잠 자고 영화보러 가고 조용히 책읽고 지내련다~ 10월1일(추석) 이른 아침에 눈이 떠져 책좀 읽다가 이내 늦잠을 ..

사는 이야기 2020.10.11

힐링텃밭

움츠러드는 마음을 펴자며 친구가 부른다. 수서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디 시골의 가을을 뚝 떼어다 놓은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친구의 텃밭으로 먼저 가 보았다. 50여 포기 배추와 무가 정성스런 주인의 보살핌에 응답하듯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냘피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와 억새밭에서 초가을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제법 널찍한 세곡천엔 해오라기가 혼자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삽상한 가을이다.

사는 이야기 2020.09.26

강이생일 축하

강아, 생일 축하한다♡ 어느덧 울아들이 사십 중반을 넘어서는구나. 온가족이 모여 민어찌개도 먹고 네가 좋아하는 딱딱한 복숭아도 함께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 하는 건데-- 참 이상한 세월이 우리의 만남을 가로막는구나. 로사한테 깜짝 생일선물로 뭐가 좋을 것 같냐니까 편지나 카드가 어떻겠냐 해서, 어제 교보문고에서 네가 좋아할 만한 책 몇 권 골라보았다. 재미있게 읽었음 좋겠다.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한다. 지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는 말 실감하며 살 수 있기 바란다. 사랑해, 울 막내아덜!♡ 2020년 7월 28일 엄마가. 로사 꺼 1.함부로 내 얘기 하지마 유희선(방송작가)/실크로드 2.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임이랑(식물관련 방송인,디어클라우드 작곡연주자)/바다출판사 강..

사는 이야기 202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