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이야기 엄지이야기 맑은바람 바위처럼 늠름하던 엄지가 어느 날부터 검지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키만 훌쩍 큰 검지는 힘에 겨워 새끼 쪽으로 서서히 몸 기댄다 마침내 그 작고 여린 것에게 마음까지 내주는 걸 보고 엄지 옆에 슬픈 옹이 하나 산처럼 부풀어 올랐다 (2004. 5. 25) 글사랑방/자작시 2009.06.10
새 식 구 새 식 구 맑은바람 한여름 햇빛 속에 푹푹 찌며 영글었다- 마을버스 탈탈탈 시외버스 덜컹덜컹 기차 칸에 얹혀 서울살이하는 아들 보러 갔다 아들집에 올라온 마늘 양파 콩 보따리-- 노오란 콩알 한 개 콩자루에서 튀어나와 떼구르르- 대문 옆 풀밭에 멈추었다 사흘 밤낮 장대비 오는 마당 지키더니 어.. 글사랑방/자작시 2009.06.10
살얼음 한해 살얼음 한해 맑은바람 힘든 일 버거운일 더러는 기쁜 일 감사한 일 어렵사리 살아낸 일이 다 나혼자만의 힘은 아니었습니다. 힘들 때 위로해준 사람들 버거운 일 함께해준 사람들 기쁘고 감사한 일 더불어 즐거워해준 사람들 그들과 함께 새해 새날들을 열어가고 싶습니다. 더러는 힘든 날이 올지라도.. 글사랑방/자작시 2009.06.10
배추같은 그녀 배추같은 그녀 맑은바람 저 멀리 아지랑이 속에서 그녀가 웃으며 걸어나온다 오늘처럼 이른 봄비 삭정이로 웅크린 나뭇가지에서 봄 재촉 하는 날이면 약학대학을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때려 치아뿐지고 국문과를 택해 국어선생이 된 그녀- 선생질도 따분하고 사무적인 게 천성에 안 맞는다며 .. 글사랑방/자작시 2009.06.10
밥 한 숟갈 밥 한 숟갈 맑은바람 바람모지 시장통 한 켠 먼지 앉은 식판에서 찌꺼기 반찬 이것저것 주워 먹는다 누더기 남자 하나 돌아서며 내뱉는 한 마디-- "밥 한 숟갈이라도 남기지!" 비지땀 눈물 섞어 지은 밥 먹어본 지 오래되어 밥맛조차 잊고 산 내게 귀청 찌르는 그 금속성 오로지 반찬을 위하여 존재해 온.. 글사랑방/자작시 2009.06.10
재봉[忍苦縫] 재봉[忍苦縫] 삐뚤빼뚤 들쑥날쑥 조로 조로록 한숨 한자락 눈물 방울 방울이 겉베와 속베 사이 솜으로 스며 저며들어 한 땀 한 땀 걸음마 떼는 아기처럼 누비옷으로 거듭 거듭나는 아! 어머니의 주름살 (2003. 2. 22) 글사랑방/자작시 2009.06.10
너에게 배운다 너에게 배운다 맑은바람 감나무 꽃진 자리에 올망졸망 감알이 나오더니 가지 끝이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어느 날부터 한 알 두 알 떨어지는 감알들 마당 수북히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데 어찌 저리 매정히도 떨어 내나 그 어느 것도 버리지 못한 채 끌어안고 그 사슬에 매어 사는 사람들 세.. 글사랑방/자작시 2009.06.09
금강산 만폭동 금강산 만폭동 맑은바람 호호탕탕 물거품 일으키며 내달아 성급한 여울 만나 낭랑하게 소리치고는 작은 골짜기 도란도란 빠져나가니 함께 흐르고 싶어 꿈틀거리는 송림 물소리 산소리 한 데 얼려 빚어내는 억척스러운 화음 너럭바위 절벽 아래 한자락 걸쳐 놓은 동자의 슬픈 꿈 (2002. 2. 23) 글사랑방/자작시 2009.06.09
古 寺 古 寺 맑은바람 구름 끝에 걸린 운길산 수종사 노스님 어디 가고 저 혼자 돌아가는 테입에서 낭랑히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 졸음 겨운 마당개 부처님 얼굴로 염불한다 (2002. 2. 24) 글사랑방/자작시 2009.06.09
꽃씨와 수녀 꽃씨와 수녀 맑은바람 초겨울 햇살 속에 주인 잃은 물봉숭아 알몸 줄기 드러내고 오르르 떨고 있는 부시시 눈뜬 아침 액자창 너머로 짱짱한 여름 아침 햇살로 화안하니 웃음발 날리던 건너집 마당 아기수녀 꽃이 참 이쁘다며 물주는 당신 모습 더 아름답단 말 숨겼더니 편지봉투 하얀 속에 이태리 물.. 글사랑방/자작시 2009.06.08